2020. 09. 03
Chichibu, Saitama, Japan
당시 나는 프랑스 디저트 누가 글라세(Nougat Glacé)에 푹 빠져있었다.
한국행이 결정되고 남은 연차를 다 써서 한 달동안 푹 쉬며, 일본에서의 인연들과 작별 인사를 하며 시간을 보냈다.
도쿄에 사는 고등학교 친구와 마지막으로 일본에서 여행을 가기로 하였고, 나는 누가 글라세 맛집을 찾다 치치부(秩父)에 위치한 타이잔도 카페(泰山堂カフェ)를 알게되었다.
그래서 우리는 단지 그 이유만으로 우리의 여행지를 정하게 되었다.
도쿄의 이케부쿠로(池袋)역에서 세이부 치치부(西武秩父)역까지 이어지는, 마침 2019년에 개통된 세이부철도에서 운영하는 라뷰(Laview)를 타고 여행지로 향했다.
개통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기차 내부는 매우 깨끗했고, 평일이라 그런지 내가 탄 차량에 승객은 출발부터 도착까지 한두명 정도였다.
좌석 아래까지 창이 크게 뚫려있어서 치치부에 도착할 때까지 작은 마을과 강, 숲, 그리고 산의 풍경을 만끽할 수 있었다.
목적지에서 친구와 합류하여 바로 먹으러 간 대망의 누가 글라세.
밥을 먹기 귀찮았지만 산에 갈 예정이어서 배는 채우자고, 이 외에도 디저트를 두 개 더 시켜먹었다.
숙소에 짐을 놓고 택시를 타고 미노야마(蓑山)에 도착했다.
5시 즈음 산 정상 미노야마공원(美の山公園)에 도착한 우리는, 산 속은 일찍 어두워진다는 사실을 망각하고 7시 넘어까지 즐겁게 놀았다.
정신을 차리고 하산을 하려고 했을 땐 둘 다 휴대폰 배터리가 20% 정도밖에 남지 않아, 친구는 비행기 모드에 라이트만 켜고 나는 화면 밝기를 최대한 줄여 지도를 보며 하산하는 길을 찾았다.
깜깜한 산 속에서 열심히 길을 찾으며 내려가고 있을 때, 산 정상에서 사진을 촬영하고 있던 아저씨가 차를 타고 내려오며 우리를 발견하고 차에 타라고 권하셨지만 처음 보는 분의 차를 타기는 그래서 거절했고, 아저씨는 이 산에는 멧돼지가 출몰하니 조심하라는 말을 남기고 떠났다.
한참을 내려가고 불빛이 보이기 시작할 무렵, 갑자기 짐승이 우는 소리가 들렸고, 친구와 나는 정말 멧돼지가 있는 것 아니냐며 패닉에 빠져 불빛은 모조리 끄고 조용히 걸어갔다.
소리가 가까워졌을 때 우리는 산기슭 가정집에서 키우는 개가 짖는 소리인 것을 알아차리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고, 고생했다는 의미로 우리는 근처 야키니쿠 가게에 가서 배부르게 먹고 무사한 하산을 자축했다.
숙소에서 가장 가까운 역까지 가기 위해 산 근처 역을 찾았고, 와도우쿠로야(和銅黒谷)역은 정말 시골 마을에 있을 법한 이름이었고, 역사 안에 들어가면 선로를 지나 승강장으로 가는, 시골 마을다운 역이었다.
늦은 시간이라 그런지 역무원도 없었고, 이 역에서 타는 승객은 친구와 나 둘 뿐이었다.
그렇게 10시가 넘어 숙소 근처 역에 도착해 숙소까지 택시를 타러 찾아보니 차는 한 대도 보이지 않았고, 근처 택시 회사를 찾아보니 이미 영업이 종료한 시간이었다.
우리는 그러면 뭐, 라며 다시 걷기 시작했다. 
30분 넘게 깜깜한 시골길을 걷고 언덕길을 걸어 올라 숙소에 도착했다.
이렇게 무모하고 바보같으면서도 전혀 힘들거나 짜증나지 않고 오히려 행복하고 즐겁게 여행할 수 있었던 건, 고등학생 때같이 우리들의 추억이 하나 더 생겼다고 웃을 수 있었던 건, 10년 동안 알고 지내고 서로를 아주 잘 알고 이해하는 친구와 함께 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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